치매 돌봄의 외로운 길, 자조 모임이 필요한 이유 — 《기억의 미로를 걷는 사람들》 | Why Dementia Caregiver Support Groups Are Essential

기억의 미로를 걷는 사람들 썸네일

안녕하세요! 오늘은 제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던 책 한 권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다샤 키퍼의 《기억의 미로를 걷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스물다섯 살에 아흔여덟 살 먹은 남자의 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계획한 일은 아니었다.”

이 강렬하고도 흡입력 있는 첫 문장에 이끌려 한 단숨에 읽어 내려갔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듯 1인칭 시점으로 술술 읽히는 글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 책이 딱 그렇게 시작하더라고요. 첫 장을 펼치자마자 저자의 솔직한 고백에 마음을 완전히 빼앗겼습니다.

📊 1. 임상심리학자가 간병인이 되어 마주한 세계

이 책의 저자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 임상심리학 박사과정을 밟던 중, 우연히 학비를 벌기 위해 알츠하이머 환자의 간병인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론이 아닌 삶의 가장 치열한 현장에서 환자를 돌보며, 저자는 ‘환자와 보호자 사이의 역학 관계’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됩니다. 심리학자로서의 전문성과 1선 간병인으로서의 생생한 경험이 온전히 녹아든 덕분에, 책은 그 어떤 치매 관련 서적보다 깊은 통찰을 전해줍니다. 이후 저자는 10년간 치매 자조 모임을 운영하고 상담가를 교육 양성하며 보호자들의 마음을 치유해 왔습니다.

사실 저 역시 평소에 감정이 자주 오르락내리락하며 감정을 다루는 데 어려움을 느끼곤 합니다. 그렇다 보니 ‘매 순간 한계를 시험받는 알츠하이머 환자의 보호자와 간병인들은 그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어떻게 감당할까?’ 하는 의문과 공감이 생겼습니다.급격한 고령화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환자와 보호자라는 역할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가 마주하게 될 이 무거운 역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겨내야 할지, 그 해답을 이 책에서 찾고 싶었습니다.


🔥 2. 제10장 ‘옳은 일이 옳지 않을 때’가 주는 먹먹함

책의 여러 이야기 중에서도 특히 제10장의 내용은 제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고, 우리나라에도 이런 시스템이 꼭 필요하다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알츠하이머 초기인 어머니를 홀로 돌보는 35세의 젊은 보호자 ‘제임스’의 이야기입니다.

기억의 미로를 걷는 사람들: 식사 그릇을 밀치며 부정하는 어머니와 당황해하는 아들 제임스 (Mother pushing away the dish and denying the situation while James looks distressed)
식사 그릇을 밀치며 부정하는 어머니와 당황해하는 아들 제임스
(Mother pushing away the dish and denying the situation while James looks distressed)

집안에서의 돌봄은 매 순간이 전쟁입니다. 치매 증상으로 인해 어머니가 식사 그릇을 밀치며 “내가 언제 그랬냐”고 강하게 부정할 때, 끝없는 정성을 쏟아붓던 아들은 순간 깊은 당황과 좌절감을 느낍니다. 결국 끝없는 돌봄에 지친 제임스는 도움을 얻고자 자조 모임을 찾게 되고, 그곳에서 그동안 쌓인 분노와 슬픔을 터뜨립니다.

기억의 미로를 걷는 사람들: 제임스의 분노를 지적하며 가스라이팅을 멈추라고 충고하는 자조모임 회원 (A member telling James that his mother isn't mean but it's the disease)
제임스의 분노를 지적하며 가스라이팅을 멈추라고 충고하는 자조모임 회원
(A member telling James that his mother isn’t mean but it’s the disease)

하지만 모임에 참석한 3명의 자조모임 회원들은 도리어 이성적인 잣대만 들이댑니다. 특히 한 젊은 여자 회원은 “어머니가 고약한 게 아니라 병 때문입니다. 심리 조종(가스라이팅)을 멈춰야 할 사람은 당신이에요”라며 제임스의 분노를 교정하려 들고 치매 교육 영상을 권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차가운 조언이 밤낮으로 자제력을 고갈당하며 버텨온 보호자의 취약한 마음을 무시하는, 임상적으로 매우 해로운 행위라고 강하게 지적합니다.


📈 3. 자조 모임이 존재하는 진짜 이유

저자는 보호자가 환자에게 화를 내고 비난하는 행동을 단순한 악의로 보지 않습니다. 그 내면에는 참으로 아픈 마음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기억의 미로를 걷는 사람들: 어머니가 언젠간 알아줄 것이라는 쓰라린 희망을 안고 눈물 흘리는 아들 (James crying with a bitter hope that his mother will understand one day)
어머니가 언젠간 알아줄 것이라는 쓰라린 희망을 안고 눈물 흘리는 아들
(James crying with a bitter hope that his mother will understand one day)

그 눈물은 환자를 여전히 ‘소통이 가능한 인격체’로 바라보며, “엄마가 언젠가는 내가 이렇게 힘든 것을 알아줄 거야”라는 쓰라린 희망을 버리지 못해 흘리는 역설적인 슬픔입니다. 진정한 돌봄의 치유는 바로 이 내면의 애달픈 희망과 고통을 있는 그대로 알아채 주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자조 모임이 유익한 것은 교육하기 때문이 아니라

분노든 두려움이든 슬픔이든 자신이 느끼는 것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기억의 미로를 걷는 사람들: 보호자의 고통스러운 결정을 온전히 수용하고 지지해 주는 진정한 자조모임 연대 (Support group members offering true validation and understanding to the caregiver)
보호자의 고통스러운 결정을 온전히 수용하고 지지해 주는 진정한 자조모임 연대
(Support group members offering true validation and understanding to the caregiver)

진정한 의미의 자조 모임은 정답을 가르치거나 보호자를 훈계하는 곳이 아닙니다. 요양원 입원처럼 보호자가 내려야만 하는 불가능하고 비정한 결정들을 마주했을 때, 비난 대신 “당신의 결정을 우리는 이해합니다”라고 말하며 함께 증언해 주고 짐을 나누어 드는 연대의 공간이어야 합니다.

자조 모임은, 마음 세탁소/공동의 증언/안전지대 같은 연대의 공간이어야 합니다.

  • 🧼 마음 세탁소: 분노와 슬픔을 검열 없이 있는 그대로 쏟아내고 씻어내는 정서적 허가의 공간
  • ⚖️ 공동의 증언: 고통스러운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보호자의 짐을 함께 책임져 주는 버팀목
  • 🛡️ 안전지대: “힘들어해도 괜찮다, 잠시 내려놓아도 괜찮다”는 따뜻한 지지를 베푸는 곳

✨ 4. 글을 마치며 :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

지금 우리 사회는 홀로 돌봄의 무게를 짊어진 채 슬퍼하는 제임스들에게, 그저 “이성적으로 버텨라, 더 공부하라”며 차가운 지침만 들이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옳고 그름의 잣대 대신, “당신의 결정을… 우리는 이해합니다.”라고 말하며 무거운 짐을 같이 바라봐 주는 따뜻한 연대의 공간. 이런 진정한 의미의 자조 모임이 우리나라에도 더 많아지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치매라는 긴 터널을 걷고 있는 모든 보호자분들에게 이 책이 따뜻한 위로이자 마음의 안전지대 역할을 톡톡히 해내 주기를 응원합니다. 따뜻한 돌봄과 연대의 이야기는 mssahara.com에서 계속 고민하고 공유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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