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제4화: 기적
마음이 따뜻해지는 힐링 단편소설 이모, 그 네 번째 이야기입니다.
거실에서 TV 소리가 들렸다. 새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왔어? 어머, 수니야 오늘 학교 어땠어?”

수니는 거실로 들어가며 대답했다. “좋았어요.”
새엄마는 소파에 앉아 있었지만, TV를 보는 게 아니라 노트북으로 뭔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옆에는 빨래가 깔끔하게 개어져 있었고, 거실은 티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래? 다행이네. 문희야, 수니 간식 챙겨줬어?”
“네, 언니. 과자 샀어요.” 이모가 편의점 봉지를 들어 보이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과자?” 새엄마가 노트북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문희야, 과자보다는 과일이 더 좋지 않을까? 수니 건강 생각하면. 내가 아까 사과 깎아놨는데, 그거 먼저 먹이지 그랬어.”
“아… 죄송해요. 제가 생각을 못 했네요.” 이모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괜찮아, 괜찮아. 다음부턴 그렇게 해. 수니야, 사과 냉장고에 있으니까 먼저 먹어. 엄마가 정성껏 깎아놨어.” 새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수니는 냉장고를 열었다. 정말로 사과가 예쁘게 깎여서 랩으로 싸여 있었다. 토끼 모양 피규어까지.
“고마워요.” 수니가 사과를 꺼내며 말했다.
“별말씀을. 엄마니까 당연한 거지. 그나저나 문희야, 오늘 설거지는 했어?”
“아… 아직이요. 지금 할게요.” 이모가 부엌으로 향했다.
“어머, 벌써 6시가 다 됐네. 문희야, 설거지하면서 저녁 준비도 같이 해줄 수 있어? 나는 이 작업 마무리해야 해서. 오늘 저녁은 된장찌개 어때? 재료는 다 있을 거야.”
“네, 알겠어요.” 이모가 부엌으로 들어갔다.

새엄마는 다시 노트북에 집중했다. 수니는 사과를 먹으며 새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엄마는… 나쁜 사람인 걸까, 아닌 걸까?’
사과를 깎아준 것도, 집안을 깨끗하게 정리한 것도, 다 엄마가 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모에게 하는 말투는… 뭔가 이상했다. 나쁜 말은 아닌데, 듣고 있으면 이모가 점점 작아지는 것 같았다.
“수니야, 숙제는 다 했어?” 새엄마가 노트북을 보며 물었다.
“아직이요.”
“그럼 방 들어가서 숙제부터 해. 저녁 되면 부를게. 엄마가 오늘 중요한 일 마무리해야 해서 좀 바쁘거든.”
“네.” 수니는 사과 접시를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닫고, 수니는 책상에 앉았다. 부엌에서 이모가 설거지하는 소리, 칼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녁 식사 시간.

식탁에는 이모가 만든 된장찌개, 계란말이, 김치, 그리고 밥이 차려져 있었다.
새엄마가 찌개를 한 숟가락 떠먹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맛있네. 문희야, 오늘은 간이 딱 좋아.”
“감사합니다, 언니.” 이모가 환하게 웃었다.
“근데 문희야, 계란말이는 좀 탔네? 불 조절을 조금만 더 신경 쓰면 더 예쁘게 나올 텐데.” 새엄마가 계란말이를 집어 들며 말했다.
이모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아… 죄송해요. 다음엔 더 잘할게요.”
“괜찮아, 괜찮아. 맛은 있어. 그냥 조언해주는 거야.” 새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수니는 계란말이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전혀 타지 않았다. 오히려 딱 적당하게 익어서 맛있었다.

“나는 맛있는데.” 수니가 또박또박 말했다.
새엄마가 수니를 쳐다봤다. “수니야, 그래도 더 잘 만들 수 있으면 더 좋잖아? 엄마는 문희이모가 더 발전했으면 해서 그러는 거야.”
“…” 수니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밥을 먹었다.
“참, 수니야.” 새엄마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다음 주에 현장학습 간다며? 선생님한테 문자 왔던데.”
“네, 과학관 가요.”
“보호자 동반도 된다던데, 엄마가 같이 갈까?” 새엄마가 상냥하게 웃으며 물었다.
수니는 숟가락을 든 채 멈칫했다. 옆에서 이모도 긴장한 표정으로 수니를 바라봤다.
“아니요, 괜찮아요.” 수니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왜? 엄마랑 같이 가면 재밌을 텐데? 엄마가 과학관 설명도 잘해줄 수 있어. 엄마 대학 때 과학 전공했잖아.”
“저는… 이모랑 같이 가기로 했어요.”
새엄마의 미소가 잠시 굳었다가 다시 돌아왔다. “문희이모랑? 수니야, 이모도 가고 싶어 하는 거 맞아?”
이모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언니. 저… 수니랑 같이 가고 싶어요.”
“그래? 그럼 문희가 가는 게 좋겠네. 근데…” 새엄마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날 아침 일찍 출발한다던데, 괜찮겠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거 힘들어하잖아.”
“괜찮아요. 일찍 일어날 수 있어요.” 이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근데 도시락은 어떻게 할 거야?”
“네, 언니. 제가 쌀게요.” 이모가 대답했다.
“음… 그래. 근데 혹시 힘들면 엄마한테 말해. 엄마가 도와줄게. 수니가 학교 가서 제대로 된 도시락 먹어야 하니까.” 새엄마가 친절하게 말했다.
“아니요,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 수니가 끼어들었다.
“수니야, 네가 뭘 도와?” 새엄마가 웃으며 물었다.
“이모 도와드릴 거예요. 우리 같이 쌀 거예요.” 수니가 이모를 바라봤다.
이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우리 같이 싸자!”
새엄마는 잠시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어. 근데 혹시 모르니까 엄마가 재료는 미리 준비해놓을게. 그럼 편하게 쌀 수 있잖아.”
“감사합니다, 언니.” 이모가 고개를 숙였다.
“별말씀을. 우리 가족인데.” 새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수니는 그 말을 들으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가족이라고 하면서… 왜 이모는 항상 작아지는 걸까?’
식사가 끝나고, 이모가 설거지를 하러 부엌으로 갔다. 수니도 따라가서 이모를 도왔다.
“이모, 괜찮아?” 수니가 작게 물었다.
“응, 괜찮아. 수니가 이모랑 같이 가고 싶다고 해줘서 고마워.” 이모가 설거지를 하며 웃었다.
“이모, 미안해. 엄마가 또…”
“아니야, 수니 잘못 없어. 언니는 원래 그래. 걱정해주는 거야.” 이모가 말했지만, 그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수니는 이모를 꼭 안았다. “이모, 사랑해.”
“이모도 수니 사랑해.” 이모가 물기 묻은 손으로 수니를 안았다.
두 사람은 한참을 그렇게 안고 있었다.
거실에서 새엄마가 전화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 당신 언제 들어와? …응, 수니가 현장학습 간다는데 문희랑 같이 간대. …응, 내가 가겠다고 했는데 수니가 문희랑 가고 싶대. …알았어, 당신이 와서 얘기해봐. 문희가 제대로 챙길 수 있을지 모르겠어.”
수니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빠가 오면 또 설득당할 게 뻔했다. 아빠는 늘 새엄마 편이었으니까.
“이모, 우리 방으로 가자.” 수니가 이모의 손을 잡았다.
“응, 가자.”
두 사람은 수니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토요일 저녁.

저녁 식사가 끝나고, 수니는 방에서 숙제를 하는 척하며 시계를 쳐다봤다. 8시 35분. 로또 당첨번호가 발표되는 시간이었다.
수니는 방문을 살짝 열어 복도를 살폈다. 거실에서는 새엄마와 아빠가 TV를 보고 있었다. 이모는 자기 방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수니는 조심스럽게 이모 방으로 갔다. 톡톡, 문을 두드렸다.
“이모, 나야.”
“수니야? 들어와!”
수니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모는 침대에 앉아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이모, 오늘 로또 당첨번호 나오는 날이야.”
“아, 맞다!” 이모의 눈이 반짝였다. “우리 확인해볼까?”
“응!” 수니는 핸드폰을 꺼내 로또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이모가 수니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두 사람은 작은 핸드폰 화면을 함께 들여다봤다.

“이번 주 당첨번호는…” 수니가 화면을 읽기 시작했다. “7, 14, 21, 28, 35, 42. 보너스 번호는 45.”
이모가 갑자기 소리쳤다. “수니야! 그거 우리가 산 번호잖아!”

수니의 손이 떨렸다. 서랍에서 로또 용지를 꺼내 번호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7, 14, 21, 28, 35, 42.
틀림없었다.
“이모… 우리… 당첨됐어.” 수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진짜? 진짜야?” 이모가 로또 용지를 들여다봤다.

“응, 진짜야. 1등이야, 이모.”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동시에 서로를 꼭 안았다.
“수니야… 우리 부자야?” 이모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응, 이모. 우리 이제 부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