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제3화: 수니의 작고 따뜻한 기도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이모가 갑자기 수니의 손을 꽉 잡았다.

“수니야, 저기 봐! 강아지!”
길 건너편 애완동물 가게 앞에 묶여 있는 푸들을 가리키며 이모가 신나게 말했다. 수니는 이모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이모, 신호등 초록불 되면 건너가야 돼. 강아지는 그 다음에 봐.”
“응응, 알았어!” 이모가 고개를 끄덕이며 신호등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초록불이 켜지자 이모는 수니의 손을 잡고 조심조심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런데 건너편에 도착하자마자 이모가 갑자기 멈춰 섰다.
“어? 수니야, 강아지 어디 갔어?”

아까 있던 강아지가 가게 안으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이모의 표정이 금세 시무룩해졌다.
“이모, 괜찮아. 우리 집에 가면서 다시 보면 되잖아. 그때 천천히 봐도 돼.” 수니가 어른스럽게 달래자, 이모가 다시 환하게 웃었다.
“그래! 그럼 학교 끝나고 보자!”
두 사람이 다시 걷기 시작했을 때, 앞에서 수니네 반 친구 재민이가 엄마 손을 잡고 걸어오고 있었다. 재민이 엄마가 수니를 보더니 웃으며 인사했다.
“어머, 수니야! 안녕? 오늘도 이모랑 같이 오는구나?”
“네, 안녕하세요.” 수니가 공손하게 인사했다.
재민이 엄마의 시선이 이모에게로 향했다. 그 눈빛에는 묘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문희씨도… 안녕하세요.” 재민이 엄마가 어색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모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그 미소가 너무 순수하고 밝아서 재민이 엄마도 잠시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그럼, 이만” 재민이 엄마가 짧게 말하고는 재민이 손을 잡고 지나갔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재민이 엄마가 핸드폰을 꺼내는 게 보였다.
학교 정문이 가까워지자, 이모가 갑자기 가방을 내려놓고 지퍼를 열었다.
“수니야, 잠깐만!”
“왜? 뭐 찾아?”
이모가 가방에서 작은 봉지를 꺼냈다. 안에는 사탕이 몇 개 들어있었다.

“이거, 수니 줄려고 이모가 챙겨왔어. 수업 시간에 배고프면 먹어.”
“이모, 수업 시간엔 사탕 못 먹어. 선생님한테 혼나.” 수니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럼 쉬는 시간에 먹어! 쉬는 시간!” 이모가 사탕 봉지를 수니 손에 쥐어줬다.
수니는 이모의 마음을 알기에 거절할 수 없었다. “고마워, 이모.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랑 나눠 먹을게.”
“응! 친구들한테도 나눠줘!” 이모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수니는 교문을 들어서며 뒤를 돌아봤다. 이모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수니도 작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교실로 향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수니의 표정은 어느새 평소의 밝은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집에서의 걱정은 집에 두고, 학교에서는 그냥 평범한 5학년이 되는 것. 그게 수니가 스스로 만든 규칙이었다.
교실에 들어서자 단짝 친구 민지가 반갑게 달려왔다.

“수니야! 오늘도 이모랑 같이 왔어?”
“응.” 수니는 짧게 대답하며 자리에 앉았다.
“너희 이모 진짜 착하다. 매일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고.” 민지가 부러운 듯 말했다.
“민지야, 너도 엄마가 데려다주잖아.” 수니가 가방에서 필통을 꺼내며 말했다.
“그건 그렇지만… 너희 이모는 뭔가 달라. 진짜 친구같이 재밌어 보여.” 민지가 수니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수니는 잠시 말이 없다가 작게 웃었다. “응, 이모는… 내 제일 친한 친구야.”
그때 반 아이들 몇 명이 수니 책상 주위로 모여들었다. 그 중 한 명인 준호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야, 수니야. 너희 이모 몇 살이야? 어른인데 왜 맨날 너랑 놀아?”

수니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민지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야, 김준호!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궁금해서 그러는 거지.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수니네 이모가 좀… 뭐랄까, 바보 아니냐고.”
교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수니는 천천히 준호를 쳐다봤다. 5학년답지 않게 차분한, 하지만 어딘가 서늘한 눈빛이었다.
“준호야, 너희 엄마가 남의 집 이야기 하는 게 더 바보 같은 거 아니야?”

“어… 그게…” 준호가 말을 더듬었다.
“우리 이모는 아프셨어. 어렸을 때 교통사고로 다치셨거든. 그게 뭐가 이상해?” 수니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아… 미안.” 준호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면 다야? 너희 엄마한테 가서 남의 집 이야기 하지 말라고 전해.” 수니가 또박또박 말했다.

준호는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민지가 수니의 손을 꼭 잡았다. “수니야, 괜찮아?”
“응, 괜찮아.” 수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방에서 공책을 꺼냈다. 하지만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모… 미안해. 내가 더 잘 지켜줄게.’
그때 교실 문이 열리며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자, 여러분 자리에 앉으세요. 오늘은 특별한 소식이 있어요.”
아이들이 우르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선생님은 교탁에 가방을 내려놓으며 환하게 웃었다.
“다음 주 금요일에 우리 반 현장학습 가요! 어디로 가는지 맞춰볼 사람?”
“놀이공원이요!”
“박물관이요!”
“수족관이요!”
아이들이 저마다 소리쳤다. 선생님이 손을 들어 조용히 시키고는 칠판에 글씨를 썼다.

서울 과학관
“와!”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수니도 눈이 반짝였다. 과학관이라니,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그런데 선생님, 서울까지 어떻게 가요?” 한 아이가 물었다.
“버스 타고 가요. 아침 일찍 출발해서 저녁에 돌아올 거예요. 그리고…” 선생님이 잠시 말을 멈추고 아이들을 둘러봤다. “보호자 동반도 가능해요. 부모님이나 보호자분이 같이 가고 싶으시면 신청서에 체크해서 내세요.”
수니의 머릿속에 이모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모… 같이 가고 싶어 할까?’
아니, 분명히 가고 싶어 할 것이다. 과학관이라는 말만 들어도 신나서 어쩔 줄 모를 이모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하지만 동시에 걱정도 밀려왔다. 다른 엄마들 사이에서 이모가 또 이상한 눈빛을 받으면 어쩌지? 준호 같은 애들이 뭐라고 하면?

민지가 수니를 툭 쳤다. “수니야, 너 이모랑 같이 올 거야?”
“응? 아… 모르겠어. 생각해봐야지.”
“나는 엄마 모시고 올 거야. 우리 같이 다니자!” 민지가 신나게 말했다.
수니는 애매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이 신청서를 돌리기 시작했다. 수니는 신청서를 받아들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보호자 동반: □ 예 □ 아니오
수니의 연필이 종이 위에서 멈춰 섰다.
‘이모는 분명 가고 싶어 할 거야. 그런데… 엄마가 뭐라고 할까?’
수니는 결국 ‘아니오’에 체크하려다가, 손을 멈췄다.
수니는 두 칸 모두 비워둔 채 신청서를 가방에 넣었다.
수업이 시작되었지만, 수니의 머릿속은 온통 현장학습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3시 반, 교문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이모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이모… 오늘 집에 가면서 물어봐야겠다.’
수니는 창밖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